며칠 전 정기적으로 만나는 친구들과 꽤 긴 대화를 나눴다.
우리 모임에서는 사업 이야기부터 철학, 인간관계, 자기계발, 삶을 운영하는 방식까지 주제가 계속 바뀐다. 처음에는 별개의 이야기처럼 흘러가지만, 대화가 끝날 때쯤 되면 이상하게 하나의 결론으로 모일 때가 있다.
이날도 그랬다.
처음에는 동양 철학과 서양 철학의 차이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러다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왜 사람은 해야 할 일을 알면서도 움직이지 못하는지, 꾸준함이란 무엇인지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결국 이날 대화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랬다.
감정은 흘려보내고, 행동은 설계한다.
조금 더 강하게 표현하면 이렇다.
자신에게는 초연하고, 행동에는 집요하며, 실패에는 뻔뻔하고, 시스템에는 냉정해야 한다.
감정을 없애려고 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보통 어떤 일을 하기 싫을 때 마음부터 바꾸려고 한다.
운동이 하기 싫으면 운동 의지를 끌어올리려고 하고, 일이 하기 싫으면 스스로를 자극할 만한 영상을 찾아본다. 불안할 때는 불안을 없애려고 하고, 의욕이 떨어졌을 때는 다시 동기부여를 받으려고 한다.
그런데 감정은 명령한다고 바로 바뀌지 않는다.
“불안해하지 말자”라고 생각한다고 불안이 사라지지 않고, “오늘은 열심히 해야 한다”라고 되뇌었다고 갑자기 몸에서 에너지가 솟아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감정을 바꾸려는 데 너무 많은 힘을 쓰면 정작 행동에 사용할 에너지가 줄어들기도 한다.
그래서 내면의 감정에는 수용의 태도가 필요하다.
하기 싫으면 지금 하기 싫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불안하면 내가 지금 불안하다는 사실을 관찰한다.
의욕이 없으면 의욕이 없는 상태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 감정을 나쁘다고 판단하거나 억지로 밀어내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감정을 인정하는 것과 감정에게 행동의 결정권을 넘기는 것은 다르다.
하기 싫다는 감정은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해야 할 장소로 몸을 옮길 수도 있다.
불안한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노트북을 열 수 있다.
의욕이 없는 상태에서도 운동복을 입고 현관문을 나설 수 있다.
마음은 유연하게 다루되, 행동은 적극적으로 설계하는 것이다.
꾸준함은 매일 해내는 능력이 아니다
이날 대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주제는 꾸준함이었다.
우리는 꾸준한 사람을 떠올릴 때 보통 매일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을 생각한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하고, 정해진 양의 공부나 업무를 반드시 끝내는 사람 말이다.
하지만 현실의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매일 수면 시간이 다르고, 업무량이 다르며, 갑작스러운 일도 생긴다. 집중력이 좋은 날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앉아 있어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날도 있다.
이런 인간에게 매일 동일한 양과 동일한 질을 요구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실패한다.
문제는 하루를 실패한 다음이다.
운동을 하루 빠졌다.
계획한 일을 절반도 끝내지 못했다.
아침에 늦잠을 잤다.
며칠 동안 이어오던 루틴이 끊어졌다.
그 순간 사람들은 단순한 사건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확대한다.
“나는 역시 의지가 없어.”
“이번에도 꾸준히 하지 못했네.”
“나는 원래 뭘 끝까지 못 하는 사람이야.”
하지만 오늘 계획을 지키지 못한 것과 내가 의지 없는 인간인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하나는 오늘 발생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라는 사람 전체에 대한 판결이다.
이번 시행에서 실패했을 뿐, 내가 실패자가 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꾸준함을 조금 다르게 정의해봤다.
꾸준함은 한 번도 무너지지 않는 능력이 아니라, 무너진 뒤 다시 돌아오는 능력이다.
하루를 망쳤다고 생각될 때 필요한 말은 거창하지 않다.
오늘 많이 잤다.
계획을 못 지켰다.
운동을 가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것인가.
어쩌라고. 다시 한다.
여기서 말하는 뻔뻔함은 무책임이나 자기합리화가 아니다.
실패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확대하지 않는 능력이다.
어제 실패했더라도 오늘 다시 시작하는 데는 아무런 자격도 필요하지 않다.
실패한 뒤 자책하면 두 번 손해 본다
계획을 지키지 못한 순간에는 이미 손실이 발생한다.
예정했던 일이 끝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갔으며, 기대했던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대부분은 여기에서 한 번 더 손실을 만든다.
자책하고, 부끄러워하고, 불안해하고, 자신을 의심한다.
“나는 왜 이 모양이지?”
“내가 정말 성공하고 싶은 게 맞나?”
“이렇게 간절하지 않아서 되겠어?”
이미 시간과 성과를 잃었는데, 그 위에 정신력까지 추가로 소비한다.
결국 다음 행동에 사용할 에너지마저 사라진다.
쉽게 말해 자책하면 두 번 진다.
실패한 뒤 필요한 것은 처벌이 아니라 진단이다.
잠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가.
애초에 계획량이 너무 많았던 것은 아닌가.
집중력이 떨어지는 시간에 가장 어려운 업무를 배치한 것은 아닌가.
일하기 어려운 장소에서 의지력만으로 버티려고 한 것은 아닌가.
최근 체력이 떨어진 것은 아닌가.
누군가 계속 업무를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실패를 바라보는 질문이 달라져야 한다.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하지?”가 아니라 “어떤 조건 때문에 이번 행동이 실패했지?”라고 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전날 5시간을 자고 다음 날 11시간을 잤다고 해보자.
그때 “나는 하루 종일 잠만 자는 게으른 인간이다”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보면 “내 몸은 평균적으로 7시간 전후의 수면을 필요로 하는구나”라는 데이터를 얻을 수도 있다.
자책하지 말고 데이터를 수집한다.
실패는 자신을 공격하기 위한 증거가 아니다.
다음 시스템을 수정하기 위한 자료다.
자신과 싸우지 말고 이겨놓고 싸운다
사람들은 루틴이나 자기관리를 흔히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이날 대화에서는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굳이 자기 자신과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내가 행동할 확률이 높은 위치로 나를 옮기면 된다.
운동하기 싫은 날을 생각해보자.
집에서 운동 영상을 보고, 좋은 몸을 가진 사람의 사진을 찾아보고, 운동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 떠올리며 의지를 끌어올리려고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계속 집에 있다.
침대와 소파와 휴대폰이 있는 공간에서 운동 의지만 높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럴 때는 차라리 아무 생각 없이 헬스장에 가는 편이 낫다.
운동을 90분 동안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
헬스장에 가서 스트레칭만 하고 돌아와도 된다.
심지어 잠시 앉아 있다가 집에 와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운동할 확률이 높은 장소로 몸을 옮기는 것이다.
집에 있는 사람보다 헬스장에 도착한 사람이 운동할 가능성이 높다.
업무도 마찬가지다.
집에서는 계속 눕게 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집 안에서 의지력을 강화하려고 하면 계속해서 자신과 싸워야 한다.
차라리 사무실이나 카페로 가는 편이 낫다.
노트북을 열고 작업 파일을 화면에 띄운다.
그러면 집에서 휴대폰을 보며 고민할 때보다 일을 시작할 확률이 올라간다.
손자병법의 표현을 빌리면 이것은 이겨놓고 싸우는 것에 가깝다.
전투에 들어간 다음 정신력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는 것이다.
의지보다 지형이 강하다.
집은 휴식할 때는 이길 수 있는 땅이다.
그러나 집중 업무를 해야 할 때는 죽을 땅이 될 수도 있다.
침대는 잠을 잘 때는 가장 좋은 장소지만, 업무를 해야 할 때는 가장 위험한 장소가 된다.
휴대폰이 없는 환경은 집중에는 유리하지만 빠른 고객 대응에는 불리할 수 있다.
절대적으로 좋은 공간은 없다.
내가 지금 하려는 행동에 유리한 공간과 불리한 공간이 있을 뿐이다.
루틴은 결과가 아니라 입구다
이 관점에서 보면 루틴의 의미도 달라진다.
우리는 보통 루틴을 매일 정해진 행동을 완수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운동 90분 하기.
책 50페이지 읽기.
콘텐츠 한 편 완성하기.
매일 세 시간 공부하기.
하지만 이런 목표는 모두 결과에 가깝다.
결과는 그날의 체력과 집중력, 외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반면 행동으로 들어가는 진입 장치는 조금 더 통제하기 쉽다.
운동복을 입는다.
헬스장에 도착한다.
사무실에 간다.
노트북을 연다.
프로젝트 파일을 띄운다.
책상에 책을 펼친다.
이 행동들 자체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과가 나올 가능성을 크게 높인다.
그래서 좋은 루틴은 결과를 직접 강제하기보다 결과가 발생할 확률을 높이는 조건을 만든다.
“운동을 90분 완수한다”보다 “헬스장에 도착한다.”
“글 한 편을 완성한다”보다 “문서 파일을 열고 첫 문장을 쓴다.”
“프로젝트를 끝낸다”보다 “사무실에 앉아 다음 작업 하나를 시작한다.”
루틴은 결과가 아니라 입구다.
입구를 통과하면 그다음 행동은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이어질 때가 많다.
무너지는 날을 위한 최소 기준을 만든다
아무리 좋은 환경과 시스템을 만들어도 정말 하기 싫은 날은 생긴다.
잠을 거의 자지 못한 날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터진 날도 있다. 몸이 아프거나 정신적으로 지친 날도 있다.
그런 날까지 평소와 똑같은 기준을 요구하면 루틴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최소 실행 기준이다.
아무리 하기 싫어도 오늘 이것 하나만큼은 끝낸다.
콘텐츠 하나.
운동 한 세트.
고객 응대 하나.
진행사항 하나 기록하기.
프로젝트 파일 한 번 수정하기.
중요한 의사결정 하나 내리기.
생산량만 보면 부족한 하루일 수 있다.
하지만 루틴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는다.
물론 최소 기준을 매일 낮은 성과를 내는 핑계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최소 기준은 평상시의 목표가 아니라 추락하는 날을 위한 안전망이다.
목표는 세 단계로 나누는 것이 좋다.
최저선은 무너지는 날에도 반드시 하는 양이다.
기준선은 평범한 날 해야 하는 양이다.
확장선은 컨디션이 좋은 날 추가로 하는 양이다.
매일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컨디션이 나쁘다는 이유로 모든 행동을 중단할 필요도 없다.
하루가 아니라 주간과 월간 총량을 본다
사람의 하루는 변동성이 크다.
어떤 날에는 열 시간 동안 몰입해서 일할 수도 있다.
반대로 어떤 날에는 두 시간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런데 매일 밤 그날의 성과만 놓고 자신을 평가하면 감정이 크게 흔들린다.
열심히 한 날에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처럼 느끼고, 못한 날에는 인생 전체가 무너진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일주일 단위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월요일에는 많이 일하고 화요일에는 적게 일할 수 있다.
수요일에는 운동에 집중하고 목요일에는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금요일에는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겨 아무것도 못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주간 총량이 유지된다면 전체 계획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오늘 부족한 업무는 내일 보충할 수 있다.
중요도가 떨어진 일은 다음 주로 미룰 수도 있다.
일부는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있다.
계획량 자체가 과했다면 줄일 수도 있다.
꾸준함은 매일 동일하게 상승하는 직선이 아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앞으로 이동하는 파동에 가깝다.
꾸준함은 직선이 아니라 파동이다.
하루의 실패가 전체 계획의 실패는 아니다.
모든 것을 잡으려 하면 핵심까지 놓친다
대화 중 사탕 바구니와 관련된 이야기도 나왔다.
병 안에 사탕이 가득 들어 있는데, 한 손으로 너무 많은 사탕을 움켜쥐면 손이 병 입구에서 빠지지 않는다.
사탕을 모두 꺼내고 싶다면 오히려 일부를 놓아야 한다.
삶과 일도 비슷하다.
모든 고객에게 24시간 즉시 대응하려고 한다.
모든 업무를 직접 처리하려고 한다.
들어오는 모든 기회를 잡으려고 한다.
매일 모든 루틴을 완벽하게 지키려고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잡으려는 순간 가장 중요한 것까지 잃을 수 있다.
좋은 컨디션을 잃고, 중요한 업무에 사용할 집중력을 잃고,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잃는다.
그래서 일부는 의도적으로 포기해야 한다.
모든 고객에게 즉시 대응하는 것을 포기하고 정해진 시간에 답변할 수 있다.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하는 것을 포기하고 일부를 위임할 수 있다.
모든 기회를 잡는 것을 포기하고 핵심 사업에 집중할 수 있다.
매일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주간 총량을 관리할 수 있다.
이때 포기는 패배가 아니다.
전체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일부를 포기하는 것이다.
전부를 가지려는 욕심 때문에 핵심까지 잃지 않아야 한다.
세상을 공부한 다음에는 자신을 공부해야 한다
대화 후반부에는 조금 더 근본적인 주제로 넘어갔다.
사람은 무엇 때문에 계속 움직이는가.
누군가는 돈 때문에 움직이고, 누군가는 인정받기 위해 움직인다. 어떤 사람에게는 새로운 것을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가장 강한 원동력이 된다.
경제를 공부하며 세상을 이해하고, 역사를 통해 인간과 사회의 흐름을 바라보며, 다양한 철학과 관점을 비교해 본질을 찾는다.
하지만 외부 세계를 공부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다른 벽을 만난다.
세상을 아무리 잘 이해해도 자기 자신을 운영하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언제인가.
몇 시간을 자야 정상적으로 회복되는가.
어떤 공간에서 일을 시작하기 쉬운가.
어떤 종류의 일이 내 에너지를 빠르게 소모시키는가.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강한 호기심을 느끼는가.
무엇을 포기해야 중요한 것을 지킬 수 있는가.
성장의 초기에는 세상을 이해하는 지식이 중요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을 다루는 능력이 성장의 병목이 된다.
가장 오랫동안 연구해야 할 대상은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
실패한 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시작하기
이날 대화는 철학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결국 자기 운영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로 끝났다.
감정은 억지로 없애지 않는다.
하기 싫은 감정과 불안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
하지만 행동은 감정에만 맡기지 않는다.
행동하기 좋은 장소로 몸을 옮기고, 결과가 아니라 진입 행동을 루틴으로 만든다.
계획을 지키지 못했을 때는 자신을 심판하지 않는다.
왜 실패했는지 데이터를 모으고, 환경과 시간과 계획량을 다시 조정한다.
하루가 무너졌다고 전체 계획을 포기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연결고리를 남기고, 주간과 월간 총량으로 자신을 평가한다.
모든 것을 움켜쥐려고 하지 않는다.
일부를 포기해 가장 중요한 것을 지킨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다시 시작한다.
거창한 반성문도 필요하지 않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는 결심도 필요하지 않다.
어제 실패했더라도 오늘 해야 할 일을 다시 하면 된다.
꾸준한 사람은 매일 성공하는 사람이 아니다.
실패한 하루를 실패한 인생으로 확대하지 않는 사람이다.
오늘 계획을 지키지 못했는가.
운동을 가지 않았는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가.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면 된다.
어쩌라고. 다시 한다.
'작문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동기 부여 명언] 행복을 찾아 도망친 곳에 평화는 없다. (0) | 2022.12.07 |
|---|---|
| 짜증나는 그남자에 대한 그녀의 심리(feat.도박에 빠지는 원리) (0) | 2022.12.06 |
| 수능을 앞둔 이들에게. 재수를 생각하는 이들에게 (0) | 2022.10.25 |
| 꿈을 설계하는 세가지 방법 (부제: 빌드업 공략 (0) | 2022.09.13 |
| 내 꿈은 행복해지는 것 (0) | 2022.09.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