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間)
이곳으로 전입온지도 벌써 6개월째다. 병장을 달고도 3년째 전역을 못하는 내 신세는 비참하기 짝이없다.
무슨 사고를 쳤는데 병장을 3년째 하고 있냐고? 딱히 사고를 치진 않았다.
그냥, 전역하기 한달전쯤에 좀비사태가 터졌을뿐이다.
나는 여수 땅끝에서 군복무를 했기 때문에 민간인들과 접촉도 거의 없어 별로 와닿지 않았다.
처음엔 전국민이 단체로 몰래카메라를 하는줄 알았다. 트는 뉴스 채널마다 좀비사태에 대해 보도했으니 말이다.
후임들의 전역하기전에 장난이겠거니 했지만.. 이제는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보충인력으로써 주요 거점 전초기지들을 옮겨다니는 생활만 2년7개월째다. 아직까지 실제로 좀비 본적은 없다.
내가 복무하던 곳은 고요한 여수밤바다에서 찰랑거리는 파도소리만 들렸고 기지를 이동할 때는 사방이 철판으로 막힌 특수차량을 타고 이동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납득할만한 요인은 핸드폰 통신이 멈추고 TV프로그램들이 하나 둘씩 송신을 멈추는걸 보고서야 실감했다.
1년쯤됬을땐 어이없으면서도 반가운 일이 있었다. 고등학교친구 '김현'이 입대당해서 우리 부대로 오게 된것이다.
건장한 대한민국 남성이 입대하는건 당연한 일이지만, 사실 난 이미 민간인 신분으로 바깥생활을 즐기고 있을 예정이었고 그들은 군부대의 쓴맛을 이제 맛보기 시작할 예정이었다.
문득 이 모든일이 전역 한달전에 일어났다는게 너무 분하고 억울했다. 실제로 부대내에서는 나같은 짬을 가진 병장들이
새로들어온 이등병을 갈구기 일수였다. 그래서 현아 밖에서 맥주빨고 치킨 뜯을땐 신났지?
2년차쯤부터 기이한 일들이 벌어졌다. 전초기지를 논산 육군훈련소로 옮기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다. 이때 처음으로 좀비의 존재를 인식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차로 이동하면서 뭔가.. 고깃덩이 같은것들 위로 지나가는 기분이었거든..
그리고 한두명씩 감염의심군으로 분류되어서 격리되기 시작했다. 겉보기엔 멀쩡한데 대체 뭐가 잘못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비닐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우린 그들에게 식량을 배분하고 잡다한 심부름을 도맡아 주었다. 근데 격리가 이렇게 허술해도 되는거야..? 짬이 좀 있다는 녀석들은 몰래 탈출해서 노래방이든 PX든 자유롭게 이용하곤 했다. 나중에 간부에게 듣기론 상부에서 명단을 짜서 보내줬단다.. 기준이 뭔지는 자기들도 모른다고...
군대에서는 온갖 기행이 일어난다고 하지만 어떤 정신나간 녀석이 몰래 격리자들의 피를 수집하고 다녔다. 뒷돈을 좀 찔러줬다나.. 그중에는 중증 격리자로 더이상 얼굴을 볼 수 없는 놈들도 있었는데, 그들의 피를 '좀비가된 녀석들의 피' 라며 나눠주고 다녔다. 이걸 먹으면 너희도 의가사 전역할 수 있다나.. 물론 그걸 먹었다고 전역하는 놈은 없었다. 대신 장염에 걸려서 일주일동안 화장실에 감금당하다 시피 들락거리긴 했다. 엉덩이 안아픈가 몰라...
누가 나눠줬는지는 결국 찾지 못했지만 적어도 열심히 화장실에 간 녀석들은 징계먹었다.
다시 지금이다. 슬슬 현이도 원래대로라면 전역할쯤이 되니 어지간한 일에 능숙해져 있었다. 사실 상병쯤 달때부터 말만 존대였지 이전처럼 편하게 대했다. 현이는 말재주는 없었지만 준수한 외모에 남들말을 잘 들어주고 심한 장난도 잘 받아주는 성격으로 다양한 부류와 어울려지내 발이 넓었다. 그중에는 질나쁜 무리들도 있었는데, 그들과 어울리고 있으면 넌지시 적당히 받아주고 자주 어울리지 말라고 잔소리하곤 했다. 그러던중에 오늘 기어코 사고가 났다.
여느때처럼 현이와 근무교대를 가던 중 멀리서 차단 개폐문을 닫는 남자의 뒷모습을 봤다. 누군가 오기로 예정되거나 난민수용절차가 완료되었을때 열리는 개폐문을 닫다니 이상했다. 나는 재빨리 뛰어가 "야 너 뭐야!" 라고 소리치고 총을 겨눴다.
개폐문의 유리창틈사이로 현이가 보였다. 조금 난처하지만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표정으로 "장난이야 진정해 진정" 이라 말하는 듯 했다. 장난이라기엔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가까이서 뒷모습을 보니 직각두상에 작은키 억지부려 밀어버린 스킨헤드, 그 양아치 무리의 한명이 틀림없었다.
그녀석은 몸을 돌려 천천히 문에서 멀어졌다. 아니 정확히는 나를향해 걸어왔다는게 맞는 표현일까.. 그런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하고도 유유히 걷는게 굉장히 어이없었다. 하지만, 난 그자리에서 온몸이 굳어버렸다. 능청스럽게 손을 올리며 "그냥 장난이야" 라는듯한 웃음을 지었지만, 그는 눈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눈이 있어야할 자리에 붕대를 공처럼 감아서 채워넣은듯한..내가 보고 있는게 맞는것인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뒷문이 열리며 키가 2m는 될법한 녀석이 걸어와 그를 밀쳤다. 명찰을 보면 분명 그 양아치 무리의 한녀석이 맞는데.. 내가 아는 그녀석은 적어도 사람답게는 생겼다.
저렇게 팔다리 목이 치즈를 늘려놓은듯이 길고 새까맣게 그을린 녀석도 아닐뿐더러 키도 크긴 했지만 180정도였다.
뭔가 시비조로 대화하는듯 보였으나 인간의 언어는 아니었다. 어깨로 보이는 신체부위를 서로 밀치며 다투는듯 했으나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저게 밖에서 날뛴다는 좀비의 모습인가? 나만 저렇게 보이는건가? 외부인인가? 쏴야하는가? 지원요청을 해야하나? 죽는건가? 한순간에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놨다. 정리돼지않았다. 아니 정리할 수 없었다. 오직 현이만이 평소와 같은 모습이었다. 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 미안미안 장난치느라 교대가 늦었지? 빨리 교대해줄게.." 라며 조끼와 완장을 건네었다. 나는 겨누던 총을 반쯤 내린체 굳은채로 현이에게 물었다. "야.. 내눈이 이상한거냐..? 왜 사람도 아닌것들이 저기서 설치는거야?"
충분히 그것들에게 들릴만한 거리였고 그것들이 얼굴을 꾸기며 나에게 다가왔다. 현이는 당황하며 나와 그것들 사이를 중재하려 했지만 갑자기 시야가 붉게 물들고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기습경보- 기습경보- 이것은 실제 상황으로 적들의 기습이 시작됬다. 각 부대원은 신속히 전투태세를 갖추어····" 잠시후 들려오는 무전에 따르면 민간인으로 보이는 무리가 좀비떼를 몰고 부대에 정면돌파 했다는 보고였다. 눈앞에 보이는 괴생명체들도 신속히 이동해서 장구류를 챙기고 무장하기 시작했다. 그 어떤 부대원들도 그것들에게 딴지걸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눈에만 보이는 듯 했다. '요즘 많이 피곤한가.. 헛것이다 보이나보네..' 라 대충 생각하고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 생각하며 황급히 움직였다.
보통 이런경우 개폐문을 열어 민간인 무리를 모두 수용하고 임시 수용소로 옮겨진다. 그리고 좀비무리가 도달하기전에 개폐문을 막고 문 위로 올라가서 화력을 퍼부어 좀비무리를 정리한다. 라고 훈련을 받아왔지만 방금까지 괴생명체들을 목격하고 진짜 좀비들까지 마주하려니 매우 긴장되었다. 나는 문 아래에서 민간인들을 빠르게 인도한 후에 화력지원을 가는 역할이었는데, 민간인 무리에서 반가운 얼굴을 발견했다. 중학교 동창이던 태수와 평선이었다. 만나서 반가운 얼굴을 표현하기도 잠시 안부를 물을새도 없이 서로임을 알아보는 인사만 나누고 순식간에 지나갔다. 찰나의 순간 태수는 뒤돌아보며 겁에 질린 눈과 약간의 미소를 띄며 입모양으로 말했다. "평선이 감염자야."
그순간 뇌리에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뭐지? 지금 감염자를 밀입하려는건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감염자야? 좀비라며, 아까 본 괴생물체보다 훨씬 정상인처럼 보이는데? 그럼 왜 저기 얌전히 앉아있는거야? 하루에 두번씩이나 그것도 연속해서 많은 생각이 몰려온 내 뇌는 결국 과부하가 걸렸고 생각하기보다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
나는 재빠르게 장전손잡이를 당기고 그들이 타고있는 차량을 겨냥해 방아쇠를 당겼다. 우리기지를 지키겠다는 본능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한가지 멍청한 점은 실탄창을 끼우지 않고 이행동을 했다는 점이었다. 개폐문이 닫히고 태수와 평선이를 싣은 트럭은 임시수용소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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